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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공포 영화가 관객을 가장 무섭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살목지를 보고 나서 문득 곡성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그 찝찝함, 영화관을 나오면서 옆 사람에게 "그래서 누가 귀신이었던 거야?"라고 되물었던 그 기억이요. 답을 못 찾은 채 극장 문을 나섰던 영화가 또 있었나 싶었습니다.


곡성 귀신의 정체 — 이미지 없는 공포가 더 무섭다
곡성에는 전형적인 공포 영화의 문법이 빠져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시각적 귀신 현현(顯現)'이 없습니다. 여기서 귀신 현현이란, 관객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귀신의 실체적 등장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는 이 장치를 통해 관객의 공포를 촉발시키지만, 곡성은 그 방식을 완전히 거부했습니다.
외지에서 마을로 흘러들어온 일본인(국촌 주재원 캐릭터로 불리는 그 인물)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온갖 흉흉한 소문의 진원지가 됩니다. 사람들이 귀신이 아닐까 의심하는 존재들이 분명히 나오기는 합니다. 그런데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그 존재들 모두 '실체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귀신처럼 보이는데 사람이고, 사람처럼 보이는데 귀신 같은 행동을 합니다.
나홍진 감독은 이 모호성(ambiguity)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모호성이란 어느 한 방향으로 확정하기 어려운 다의적 상태를 뜻하는데, 곡성은 이 모호성을 이야기 전체에 걸쳐 유지하는 방식으로 공포를 구성합니다. 귀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관객의 머릿속에서 귀신이 직접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게 가장 영리한 공포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으로 본 것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는 잘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 외지인(일본인)은 마을 모든 이상 현상의 출발점으로 지목된다
- 귀신으로 의심받는 존재들은 모두 실체가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 시각적 귀신 현현 없이 모호성만으로 공포를 완성하는 구조다
- 관객이 스스로 귀신의 이미지를 완성하도록 유도한다
무명의 역할 — 절대자인가, 방관자인가
흰 소복을 입고 등장하는 무명(배우 천우희 분)은 제가 곡성에서 가장 오래 생각했던 인물입니다. 이 캐릭터를 두고 "천사다", "귀신이다", "신이다" 라는 의견이 분분한데, 저는 어떤 한 가지 해석으로 고정하는 순간 이 영화의 절반을 잃는다고 봅니다.
무명은 극의 흐름 속에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다시 빼앗는 존재입니다. 카타르시스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감정의 정화 혹은 해소를 의미합니다. 무명이 등장해 뭔가를 알려주는 것 같은 장면에서 저는 잠깐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이야기는 더 어두운 방향으로 틀어집니다. 안도를 주고 빼앗는 방식이 의도적으로 반복됩니다.
무명이 가장 강한 존재처럼 보일 때와 가장 나약한 존재처럼 보일 때가 교차하는 방식은, '이원론적 세계관(dualistic worldview)'을 이 영화가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원론적 세계관이란 선과 악, 신성과 악마성을 대립하는 두 축으로 설정하는 시각인데, 무명은 이 두 축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관객이 어느 쪽으로도 확신을 갖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녀가 절대자의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과,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사람처럼 보이는 장면이 같은 영화 안에 공존합니다.
무명을 단순히 선의 편으로 읽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 독법이 영화가 설계한 혼란을 너무 쉽게 해소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무명의 존재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열린 결말 — 종구의 싸움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주인공 종구는 범인을 잘 잡기로 소문난 영리한 경찰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안에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판단을 내립니다. 처음에는 무당을 믿지 않다가 딸의 상태가 악화되자 무속 신앙(shamanism)에 의존하기 시작합니다. 무속 신앙이란 특정 종교 체계에 속하지 않는 원초적 형태의 영적 신앙으로, 무당을 매개로 신령과 소통한다고 믿는 믿음 체계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종구가 갑자기 믿음을 바꾸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였습니다. 아픈 자식을 앞에 둔 부모는 이성적 판단보다 빠르게 감정이 움직이니까요.
종구는 외지인을 범인으로 확신하고 친구들과 함께 그의 아지트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외지인을 제거하려 했지만 실패합니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딸은 사라지고 아내와 어머니는 이미 살해당해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허탈함이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기를 쓰며 외지인을 쫓은 시간이 결국 가족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잔인한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열린 결말(open ending)'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단일한 해석을 차단하고 관객에게 판단을 위임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곡성이 선택한 이 방식은 일부 관객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누가 신이고, 누가 귀신이고, 누가 악마인지 끝까지 알 수 없는 채로 영화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머릿속에서 장면들을 다시 돌려봤습니다. 결론을 내리고 싶었는데, 계속 미끄러졌습니다. 어쩌면 그게 이 영화의 완성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곡성은 2016년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출처: 칸 국제 영화제). 국내 누적 관객 수는 약 688만 명을 기록했으며, 나홍진 감독의 전작인 추격자, 황해에 이어 한국 장르 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자주 묻는 질문
Q. 곡성에서 진짜 귀신은 누구인가요?
A.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일본인이 악마, 무명이 천사라는 해석도 있고, 그 반대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 본인도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밝힌 바 있어, 어느 한 가지가 정답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Q. 무명(천우희)은 선한 존재인가요, 악한 존재인가요?
A. 선하다고 보는 분들도 많고,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무명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순간 이 영화의 모호성이 사라진다고 봅니다. 그 모호성이야말로 무명 캐릭터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Q. 곡성의 결말을 이해 못 했는데 정상인가요?
A. 전혀 문제없습니다. 곡성은 의도적으로 열린 결말을 선택한 영화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도 극장을 나오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감독이 단일한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 서사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Q. 곡성과 살목지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A. 두 작품 모두 외부에서 들어온 낯선 존재가 공동체에 이상 현상을 촉발한다는 구조를 공유합니다. 또 귀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의 실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공포를 유지한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곡성을 인상 깊게 본 분이라면 살목지도 비슷한 결을 느끼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론
곡성은 귀신을 보여주지 않고 공포를 만들고,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갈등을 완성하며, 답을 주지 않고 이야기를 끝냅니다. 저는 이 세 가지가 곡성을 불편하게 만드는 동시에 오래 기억나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없이 종구를 쫓다 보니 아무런 결론도 지을 수 없었다는 느낌, 그 느낌 자체가 곡성이 관객에게 전달하려 했던 경험인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저는 아직도 확신을 못 합니다. 다만 확실한 건, 살목지를 보고 나서 다시 이 영화를 떠올렸을 만큼 곡성은 잊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쉽게 답을 내주는 영화보다 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영화가 있는데, 곡성은 그런 작품입니다. 한 번도 보지 않으셨다면,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일단 그 불편함 안에 들어가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