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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석유사업, 혈통주의, 욕망)

oceanpumpkin 2026. 10. 1. 09:13

목차


    미국 석유 산업 초창기, 한 남자가 맨손으로 백만장자가 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을 모조리 잃는다. 2007년 개봉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그 이야기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미국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라는 낯선 당혹감이었습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석유사업의 민낯 — 자본주의 원시 시대의 기록

    영화의 실제 모티브는 19~20세기 초 미국의 실존 석유왕 에드워드 도헤니(Edward Doheny)입니다. 에드워드 도헤니는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석유를 발굴해 거대한 부를 쌓은 인물로, 이른바 '석유 러시(Oil Rush)'의 상징이었습니다. 여기서 석유 러시란,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 서부와 남부 일대에서 석유 매장지를 선점하기 위해 사업가들이 경쟁적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시추에 뛰어들던 시대적 광풍을 말합니다. 금광을 찾아 떠나던 골드 러시와 본질이 같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Daniel Plainview)는 이 에드워드 도헤니를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그는 독립 시추업자(Wildcat Driller)로 시작해 대규모 석유 채굴 사업으로 성장합니다. 독립 시추업자란, 대형 석유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유전을 탐사·시추하는 사업가를 가리키는 업계 용어입니다. 쉽게 말해 '혼자 맨땅에 헤딩하며 기름을 찾는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시추 현장의 묘사였습니다. 실제 유전 개발 초기에는 블로우아웃(Blowout)이라 불리는 사고가 빈번했습니다. 블로우아웃이란 지하의 강한 압력으로 석유나 가스가 통제 불능 상태로 분출되는 사고를 말하는데, 영화 속에서도 이 사고가 그대로 재현됩니다. 다니엘이 양자로 들인 아들 H.W.가 바로 이 블로우아웃 사고 현장 근처에 있다가 청력을 잃게 되죠. 저는 그 장면을 보며 당시 현장 노동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일했는지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 이후 다니엘이 청력을 잃은 H.W.를 기숙학교로 보내버리는 장면은 지금 시각으로 봐도 냉혹합니다. 장애를 이유로 자식을 멀리하는 행동인데, 역설적으로 그 시대 미국 상류층 사이에서 이런 처우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약점은 숨기거나 제거한다'는 사회진화론적 논리가 사업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였으니까요.

    • 에드워드 도헤니(Edward Doheny): 다니엘 플레인뷰의 실존 모델, 로스앤젤레스 유전 개발로 거대 자산 형성 (출처: Wikipedia - Edward Doheny)
    • 석유 러시(Oil Rush): 미국 서부·남부에서 유전을 선점하려는 19~20세기 초 사업 경쟁
    • 독립 시추업자(Wildcat Driller): 대형 자본 없이 독자적으로 유전을 탐사·시추하는 사업가
    • 블로우아웃(Blowout): 지하 압력에 의한 석유·가스 비제어 분출 사고, 당시 시추 현장의 최대 위험 요인
    요약: 실존 석유왕을 모티브로, 블로우아웃·독립 시추업자 등 당대의 위험하고 냉혹한 석유 산업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영화다.

     

     

    혈통주의와 욕망 — 미국은 왜 이렇게 미화되어 있을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서부 영화에서 카우보이들이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볼 때, 저는 그게 영화적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보고 나서는 그게 마냥 픽션이 아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이복형제라고 속이고 접근한 인물의 정체를 알게 된 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직접 죽입니다. 그 장면에서 죄책감이나 법적 공포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거슬리니 처리한다'는 논리입니다.

    이 지점이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와 비교했을 때 제가 가장 크게 차이를 느낀 부분이었습니다. 한국의 가부장주의는 억압적이긴 해도 혈연을 명분으로 '유지'하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반면 영화 속 다니엘의 혈통주의(Blood Lineage Ideology)는 철저히 배타적입니다. 여기서 혈통주의란, 자신의 혈통에서 나온 존재만을 신뢰하고 그 외의 모든 관계를 도구적으로만 바라보는 세계관을 말합니다. 다니엘이 직접 내뱉는 대사 "아무도 믿지 않는다(I don't want a partner. I want to look you in the eye)"는 그 세계관의 압축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인물 유형은 사실 완전히 낯설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도 그 고립에 고통받는 사람은 현실에도 존재합니다. 다니엘이 H.W.를 멀리 보낸 뒤에도 아들을 그리워하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제게는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들이 독립해서 자신만의 석유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떠나는 뒤통수에 욕을 퍼붓다가, 문이 닫힌 뒤 혼자 남겨진 그 장면. 욕망에만 충실하게 살았더니 결국 혼자 남더라는 서사가 너무 직접적이어서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상당히 미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개념은 누구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의 건국 이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 세계에 걸쳐 미국식 성공 신화의 상징처럼 소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드림이 실현되는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이었는지를 아카이브하듯 보여줍니다. 출처: IMDb - There Will Be Blood에 따르면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역사적 재현의 완성도를 인정받았습니다.
    <br">이런 시각에 대해 "그래도 미국은 자유와 기회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기회가 누군가의 희생과 배제 위에 세워졌다는 시각도 함께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미화는 언제나 불편한 진실을 덮습니다.

    요약: 혈통주의와 배타적 욕망으로 성공한 다니엘의 결말은 고독이었고, 이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완전한 실화는 아니지만,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소설 『오일!(Oil!)』을 원작으로 하며 실존 석유왕 에드워드 도헤니(Edward Doheny)를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는 구조이지만, 당대 미국 석유 산업의 분위기와 인물 유형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Q. 영화에서 다니엘 플레인뷰가 왜 아들을 버렸나요?

    A. 공식적인 이유는 블로우아웃 사고로 H.W.가 청력을 잃은 것이지만, 영화를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다니엘의 세계관상 장애가 생긴 아들은 사업적 약점으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순히 냉혹한 부성의 실패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혈통주의가 오히려 혈육을 망가뜨리는 역설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해석했습니다.

     

    Q. 러닝타임이 158분인데 지루하지 않나요?

    A. 158분이라는 시간이 분명 길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빠른 전개나 강렬한 액션은 없고, 오히려 긴 침묵과 느린 호흡으로 인물의 내면을 쌓아 올리는 방식입니다. 다니엘 데이-루이스(Daniel Day-Lewis)의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끝에 도달해 있는 구조라, 블록버스터를 기대하고 보면 힘들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엔 오히려 느린 템포가 불쾌할 만큼 현실적이어서 인상에 더 오래 남았습니다.

     

    Q. 영화 제목 'There Will Be Blood'는 무슨 뜻인가요?

    A. 직역하면 "피가 흐를 것이다"입니다. 석유를 뜻하는 '블랙 골드(Black Gold)', 즉 검은 피가 땅에서 솟는 이미지와, 욕망이 충돌하며 실제로 피를 보게 되는 폭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결말을 암시하는 제목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이지만, 그 '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소 다르게 해석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성공한 사람의 비참한 말년'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욕망 그 자체에 충실하게 살았을 때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냉정하게 기록한 영화입니다. 서부극의 낭만이나 아메리칸 드림의 화려함은 없습니다. 있는 건 흙먼지, 석유, 그리고 고독입니다.

    미국을 문명의 선두 주자로 막연히 이미지화하고 있었다면, 이 영화는 그 이미지를 꽤 세게 흔들어 놓을 겁니다. 제 경험상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그 시대의 냄새를 직접 맡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욕망과 인간 본성에 대한 영화를 찾고 있다면 이 영화부터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나무위키 - 데어 윌 비 블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