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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개봉한 영화 <바람>은 1990년대 학교 문화를 배경으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위계질서와 폭력, 그리고 성장을 날것 그대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낯설지 않았습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 귓가에 맴돌던 소문들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영화 바람 그 시절 학교, 우리가 몰랐던 이면
일반적으로 1990년대 학교를 떠올리면 교복 자율화나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문화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시절 교실 안은 훨씬 복잡한 세계였습니다. 체벌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던 시대였고, 이른바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교사의 물리적 제재가 당연하게 통용되었습니다. 체벌(體罰)이란 교육적 목적 혹은 통제 수단으로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행위로, 2010년 이후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전면 금지하기 전까지 한국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부모님이 안쓰러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학급에서 가출이나 정학 소식을 들을 때마다 조금 다른 세상 사람들 이야기처럼 여겼습니다. 아주 극소수의 일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제 착각이었다는 걸 훨씬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영화 <바람>은 그 착각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주인공 재필이 겪는 또래 집단 내 위계질서(位階秩序), 즉 나이·힘·인기를 기준으로 서열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청소년 사회의 권력 구조는 당시 어느 학교에나 존재했던 현실입니다. 제가 그걸 몰랐던 건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체벌이 공식 허용되던 시대 — 교사의 물리적 제재가 훈육으로 정당화됨
- 가출·정학은 '극소수의 일'이 아니라 교실 안 어디에나 존재했던 현실
- 또래 집단 내 위계질서는 영화 속 픽션이 아닌 당시 학교의 보편적 구조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의 폭력
학교폭력(學校暴力)이란 학교 안팎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신체적·언어적·정서적·사이버 폭력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한국에서는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처음으로 법적 정의가 생겼습니다. 쉽게 말해 90년대에는 지금 우리가 학교폭력이라 부르는 행위들이 법적 보호망 밖에 놓여 있었다는 뜻입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영화 속 재필은 전학 온 학교에서 기존 서열의 최하단에 놓입니다. 집단 따돌림(이른바 '왕따')과 신체 폭력이 교차하는 장면들은 지금 보면 명백한 범죄이지만, 당시 학교 현장에서는 '그러고 다니는 애들'의 이야기로 묻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그리고 저처럼 옆에 있던 아이들도 그게 '폭력'이라는 언어를 갖지 못했던 겁니다.
실제로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응답률은 1.9%로 나타났습니다. 숫자만 보면 낮아 보이지만 전국 초·중·고 학생 수 기준으로 환산하면 수십만 명에 해당합니다(출처: 교육부). 법률이 생기고 인식이 높아진 지금도 이 숫자라면, 법과 언어조차 없던 90년대의 실상은 훨씬 광범위했을 것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수치였습니다. 지금도 이 정도라는 사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성장통이라는 말로 덮어두기엔 너무 무거운 것들
성장통(成長痛)이란 원래 청소년기 신체적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통증을 뜻하지만, 오늘날에는 심리적·사회적 갈등을 감수하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폭넓게 쓰입니다. 영화 <바람>을 두고 흔히 "성장통을 그린 영화"라고 평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표현이 조금 불편합니다.
성장통이라는 단어는 묘하게 이 모든 것을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로 포장하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그 시절을 살아봤고, 그리고 성인이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은, 그 시절의 상처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오래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가해자였던 사람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고, 피해자였던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나도 그 장면을 지우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제 경우엔 학급 안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어느 정도 감지했으면서도 모른 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알았다고 한들 학교가 변했겠는가 회의적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로 돌아간다면 과연 나는 어떤 태도로 서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 없음 자체가, 이 문제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강자와 약자로 나뉘어 불필요한 싸움을 반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영화는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그 질문을 보는 사람에게 돌려놓습니다. 그게 이 작품이 불편하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바람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공식적으로 특정 실화를 원작으로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학교 문화를 배경으로 한 만큼 당시 체벌, 위계질서, 집단 따돌림 같은 실제 학교 현장의 요소들이 촘촘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극 중 묘사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Q. 90년대 학교 체벌은 정말 합법이었나요?
A. 네, 당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는 교사의 훈육 수단으로서 체벌이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체벌이 전면 금지된 것은 2010년대 이후 각 시·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도입을 통해서입니다. 그 이전에는 학교에서 매를 맞아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려웠습니다.
Q. 지금도 학교폭력이 그렇게 심각한가요?
A. 교육부 2023년 실태조사 기준 피해 응답률은 1.9%입니다. 수치로만 보면 낮아 보이지만 전체 학생 수에 대입하면 여전히 수십만 명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법과 인식이 개선된 지금도 이 정도라는 점에서, 90년대의 실상이 더 광범위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Q. 영화 바람, 청소년이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영화는 학교폭력과 신체 폭력 장면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어린 관람객에게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히려 그 불편함이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보다는 그 시절을 지나온 어른들이 봤을 때 더 묵직하게 와닿는 작품입니다.
결론
영화 <바람>을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낯설어서가 아니라, 너무 낯익어서였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극소수의 일이라고 믿었던 위계질서와 학교폭력이 사실은 훨씬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성인이 된 뒤에야 알게 되었고, 영화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묻어두기엔 이 문제는 너무 오래, 너무 깊이 남습니다. 지금 이 영화를 본다면 단순히 추억을 소환하는 감상에 머물지 말고, 내가 그 시절 어느 자리에 서 있었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아직 그 질문 앞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참고자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