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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하사탕 (역순구조, 김영호, 이창동)

oceanpumpkin 2026. 9. 28. 15:30

목차


    악인에게도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이유 자체가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어야 할까요. 저는 박하사탕을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1999년 이창동 감독이 내놓은 이 영화는, 타락한 인간의 생애를 거꾸로 펼쳐 보이며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묻습니다. 그 물음이 지금도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한 마디와 함께 회자되는 이유일 겁니다.

     

    박하사탕 역순구조, 왜 거꾸로 보여주는 걸까요

    보통 영화는 인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앞에서 뒤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박하사탕은 정반대입니다. 현재의 파국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逆順敍事) 구조를 택했습니다. 역순 서사란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 결말을 먼저 보여준 뒤 그 원인을 소급해 추적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형사 드라마에서 시체를 먼저 보여주고 범인을 찾아가는 것과 닮았지만, 이 영화에서 추적하는 건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입니다.

    첫 장면에서 주인공 김영호는 철길 위에 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두 팔을 벌립니다. 관객은 그가 왜 그 자리에 섰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 무지(無知)가 오히려 강렬한 당김이 됩니다. 저는 이 도입부를 처음 봤을 때 "이 사람이 도대체 뭘 겪은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감독은 바로 그 질문을 끌고 2시간을 달립니다.

    역순 구조의 진짜 힘은 감정의 역전에 있습니다. 처음엔 혐오스럽게만 보이던 인물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점점 낯익은 청년으로 돌아옵니다. 그 낯익음이 불편합니다. 그가 완전한 타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요약: 역순 서사 구조는 인물의 타락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의 경로를 이해하도록 설계된 장치입니다.

     

    김영호라는 인물, 동정할 수 있을까요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다기에, 피해자의 눈물을 따라가는 서사를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이창동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댄 곳은 피해자 곁이 아니라 가해자 쪽이었습니다. 정확히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인물, 진압군으로 동원된 청년 김영호였습니다.

    김영호는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됩니다. 그는 거기서 실수로 여고생을 총으로 쏴 죽입니다. 그 장면이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꿉니다. 제 경험상,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 죄를 안고 무너지거나, 아니면 그 죄보다 더 단단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거나. 김영호는 후자를 택했고, 그것이 고문경찰로의 전락이었습니다.

    고문경찰이란 단어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고문경찰이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피의자를 물리적·심리적으로 가혹하게 다루어 자백이나 정보를 얻어내는 경찰을 뜻합니다. 그 시절 한국 사회에서 이런 관행이 실재했다는 것은 여러 기록이 증언합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김영호가 그 자리에 앉은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가 민주화 운동 진압에 동원된 전력을 가진 채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려 했을 때 받았을 냉대를 상상해 봤습니다. 그 따가운 시선을 등에 지고 버티는 것보다, 차라리 그 소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편이 덜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됨
    • 우발적 총격으로 여고생 사망 — 이 사건이 그의 내면 붕괴의 기점
    • 이후 군사정권 시절 고문경찰로 전락하며 점진적 도덕 붕괴
    • 사업 실패, 이혼, 외도 등 중년 이후 사회적 관계도 전면 해체
    요약: 김영호의 타락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역사적 폭력이 한 개인에게 남긴 상흔이 만들어낸 필연에 가깝습니다.

     

    이창동 감독이 던지는 시선, 연민인가 통찰인가

    영화를 보면서 제가 계속 되물었던 게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도대체 김영호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 그를 동정하려는 건지, 고발하려는 건지, 아니면 그냥 들여다보려는 건지.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세 가지 다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의 시선은 연민도 단죄도 아닌 '이해하려는 의지' 그 자체였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의 문법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적 리얼리즘이란 개인의 삶을 사회 구조나 역사적 맥락 안에서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예술 경향으로, 인물을 미화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조건 속에서 그려냅니다. 박하사탕은 그 방법론에 가장 충실한 작품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깊이 감동받은 지점은 바로 그 통찰입니다.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사회로 복귀하려 할 때, 사회가 얼마나 좁은 문을 내주는지. 그 문이 닫히는 순간 사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감독은 매우 조용하게, 그러나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만약 제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누군가 그와 같은 눈으로 저를 이해하려 애써준다면,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삶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저에게 남긴 가장 오래된 잔상입니다.

    요약: 이창동의 시선은 연민도 단죄도 아닌, 역사적 맥락 속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태도입니다.

     

    인간은 매 순간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 이것입니다. 김영호는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냥 평범한 청년이었고, 국가의 명령 앞에서 거부의 언어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도덕적 주체성(Moral Agenc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도덕적 주체성이란 개인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극한의 상황, 특히 국가 폭력 앞에서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은 얼마나 작동할 수 있을까요.

    제 경우엔 이 질문이 꽤 오래갔습니다. 저도 살면서 비겁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옳다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못한 적,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이 김영호의 첫 번째 실수와 어느 지점에서 닿아있는 것 같아 불편했습니다. 그 불편함이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 고발물에 그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영화는 김영호를 이해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이해와 용서, 이해와 면죄는 다릅니다. 감독이 끝내 그 선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저는 이 작품을 오래 신뢰하게 만드는 근거입니다.

    요약: 도덕적 주체성의 한계를 묻는 이 영화는, 이해와 면죄를 구별하면서도 낯선 타인을 향한 공감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박하사탕 영화, 역순으로 보여주는 이유가 뭔가요?

    A. 역순 서사 구조는 인물의 현재 상태를 먼저 보여주고, 시간을 거슬러 그 원인을 추적하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관객은 처음엔 혐오하던 인물을 영화가 끝날 무렵엔 이해하게 됩니다. 단순히 결말을 숨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감정의 역전을 의도적으로 설계한 선택입니다. 이창동 감독이 왜 그 구조를 골랐는지, 생각해보면 꽤 분명해집니다.

     

    Q. 박하사탕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어떻게 다루나요?

    A. 이 영화는 5.18을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가해자 측, 그것도 자의가 아닌 동원된 진압군의 시선에서 접근합니다. 역사의 가해자 내부에 있던 또 다른 피해자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민주화운동 관련 영화들과 결이 다릅니다. 그 낯선 시각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저는 그 불편함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봤습니다.

     

    Q. 박하사탕, 결말이 왜 기찻길인가요?

    A. 기차는 이 영화 전체에서 시간의 이동을 상징합니다. 영화의 첫 장면이자 마지막 심리적 도착지가 기찻길인 것은, 김영호가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의미하는 공간으로 설정된 것입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절규가 그 위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역순 서사의 모든 조각이 맞물립니다. 되감기가 끝난 자리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Q. 이창동 감독 영화 특징이 뭔가요?

    A. 사회적 리얼리즘에 기반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들을 중심에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물을 미화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그 조건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특징입니다. 박하사탕 외에도 오아시스, 밀양, 버닝 등에서 같은 태도가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저는 그 일관성이 그를 신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박하사탕은 악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를, 우리가 쉽게 외면하는 인간의 조건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역순 서사라는 구조, 5.18이라는 역사, 고문경찰이라는 직업. 이 세 가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창동 감독은 연민도 단죄도 아닌, 이해하려는 의지를 내려놓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첫 장면의 기찻길부터 끝까지 한 번 끊지 말고 봐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다 보고 나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나는 매 순간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라고요.

    참고: https://namu.wiki/w/%EB%B0%95%ED%95%98%EC%82%AC%ED%83%95(%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