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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치매 어르신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면, 영화 속 장면이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이창동 감독의 2010년 작 <시>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60대 여성 미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윤여정 배우의 <죽여주는 여자>와 거의 연달아 봤는데, 두 편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늙는다는 것이 이렇게 무거운 주제였나 싶었습니다.

영화 시 알츠하이머를 가진 여자가 시를 쓴다는 것
영화 <시>의 주인공 미자는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 초기 진단을 받습니다. 알츠하이머란 뇌 신경세포가 서서히 손상되며 기억력과 언어 능력, 판단력이 단계적으로 저하되는 퇴행성 신경질환입니다. 쉽게 말해,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병입니다.
일반적으로 치매를 다룬 영화라고 하면 기억을 잃어가는 장면이 극적으로 묘사될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저를 가장 흔들었던 것은 거창한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미자가 단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잠시 멈추는 장면, 혼자 살며 밥을 챙겨 먹는지 불분명한 장면처럼, 아주 일상적인 장면들이 오히려 더 처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윤정희 배우는 이 역할을 위해 실제로 미술 수업을 들으며 준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덕인지 미자가 시 강습에서 사물을 관찰하려는 태도는 굉장히 자연스럽습니다. 기억이 지워져가는 동안에도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을 그녀가 잘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 영화 <시>는 2010년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으로, 이창동 감독의 작품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 영화 시).
- 주인공 미자 역은 윤정희 배우가 맡았으며, 1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었습니다.
- 영화는 손녀의 학교 친구 자살 사건을 배경으로, 미자의 도덕적 선택과 알츠하이머 진행을 동시에 다룹니다.
노화를 자연스럽다고만 생각했던 저의 착각
저는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노화(aging)를 그냥 시간이 흐르면 되는 일로 여겼습니다. 노화란 신체 세포의 기능이 점차 저하되며 회복력이 떨어지는 생물학적 과정입니다. 일반적으로 나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자연스럽게 잘 늙는 것은 전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새삼 깨달았습니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윤여정 배우가 연기한 소영은 나이 들어 생계 수단이 막혀버린 여성입니다. <시>의 미자는 인지 기능을 잃어가는 여성입니다. 두 인물 모두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자기 역할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저는 그 상실감이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 없이 노화를 맞이했을 때 더 깊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저의 꿈이 하나 생겼습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죽기 전까지 제 발로 걷는 것입니다. 신체적 자립(physical independence)이란 스스로 기본적인 일상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유지되는 동안은 존엄이 어느 정도 지켜진다고 봅니다. 그 꿈을 이루려면 지금부터 몸을 써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보다 더 비참한 현실이 있다
영화는 현실을 미화합니다. 이건 영화의 숙명 같은 것이라 탓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로 알츠하이머 가족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고, 그 경험과 영화를 비교해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 속 미자는 혼자서도 꽤 많은 것을 해냅니다. 시 강습도 다니고, 사건의 진실도 나름대로 마주합니다. 현실에서 중등도 이상의 알츠하이머 환자는 가스 불을 켜두고 나오거나, 집 밖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인지기능 저하(cognitive decline)란 기억력뿐 아니라 판단력, 언어 이해, 공간 지각 능력이 함께 무너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 속도가 빠를수록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훨씬 가혹합니다.
특히 제가 직접 목격한 것 중 가장 힘든 부분은 환자 본인의 현실 부정이었습니다.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의 환자들은 자신이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병식 결여(anosognosia)라고 합니다. 병식 결여란 자신의 인지 손상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이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병상에 누운 환자를 돌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을 만들어냅니다. 침대에 누운 환자는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인지 저하 환자의 위험은 예측이 어렵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치매 환자 수는 약 5,500만 명이며, 매년 1,000만 명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출처: WHO — Dementia Fact Sheet). 이것은 특정 개인이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가 함께 늙어가야 한다는 것
이 문제를 개인이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알츠하이머 돌봄은 가족 한 명이 감당하기에는 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경제적으로 너무 벅찬 일입니다. 영화 <시>에서 미자의 손자를 돌보는 구조가 결국 무너지는 것도 그 한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치매 친화 공동체(dementia-friendly communit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치매를 가진 사람이 지역 사회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주민, 상점, 기관이 함께 지식과 환경을 갖추는 사회적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 개념이 널리 자리잡지 못했지만, 이웃이 환자의 얼굴을 알고, 배회 시 연락할 수 있는 체계만 있어도 사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들이 그런 시각을 열어준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주는 영화가 때로는 가장 좋은 사회 교육이 됩니다. 제가 지금 건강을 챙기는 이유, 이웃 어르신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 영화를 본 이후로 달라진 것들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시> 줄거리가 어떻게 되나요?
A.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60대 여성 미자가 시 강습을 받으며 자신의 마지막 언어를 붙잡으려는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손자가 연루된 여중생 자살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이 교차되며 진행됩니다. 일반적으로 치매 영화라고 하면 기억 상실 장면이 중심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영화는 그보다 윤리적 선택과 존엄이라는 질문에 더 무게를 둡니다.
Q.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A. 가장 흔한 초기 신호는 최근 일을 반복해서 묻거나, 익숙한 단어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가까이서 본 경우에는 대화 중 갑자기 어색하게 멈추거나, 물건을 엉뚱한 곳에 두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런 증상이 지속된다면 신경과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영화 <시>와 <죽여주는 여자>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두 영화 모두 노화와 사회적 소외를 다루지만 방향이 다릅니다. <죽여주는 여자>는 생계 수단을 잃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는 이야기이고, <시>는 인지 기능을 잃어가는 여성이 존엄을 붙잡으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두 편을 연달아 보고 나서,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보다 조용히 무너지는 고통이 더 깊게 남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Q. 치매 가족을 돌보는 현실이 영화와 많이 다른가요?
A. 상당히 다릅니다. 영화는 어느 정도 미화될 수밖에 없고, 실제 돌봄 현장은 훨씬 소진이 빠릅니다. 특히 병식 결여 상태의 환자는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돌보는 가족이 감정적으로 고립되기 쉽습니다. 개인이 감당하기보다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결론
영화 <시>를 보고 나서 제 안에 남은 질문은 "어떻게 늙을 것인가"였습니다.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이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영화가 가르쳐줬습니다. 영화는 현실을 다 담지 못하지만, 현실을 인식하게 해주는 창이 됩니다.
지금 당장 거창한 준비를 시작하기보다, 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에서 시작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혼자 사는 어르신이 있다면, 가끔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치매 친화 공동체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8B%9C_(%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