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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액트 오브 킬링 (가해자, 역사청산, 상대적박탈감)

oceanpumpkin 2026. 10. 6. 10:07

목차


    1965년 인도네시아 반공 숙청으로 학살당한 사람의 수는 적게는 50만, 많게는 1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그 잔혹행위의 가해자들이 지금도 훈장을 달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로 처음 확인했을 때, 솔직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분노인지 허탈인지 구분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화면을 보면서 계속 한국이 겹쳐 보였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 가해자가 영웅이 되는 나라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2012년 완성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면서도 섬뜩합니다. 1965~1966년 인도네시아 군부 쿠데타 이후 벌어진 반공주의적 집단학살(mass killing)의 실행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 살인 장면을 직접 재연(reenactment)하게 합니다. 여기서 재연이란 단순히 배우가 연기하듯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닙니다. 실제로 사람을 죽인 그 방식, 그 장소, 그 심리를 가해자 본인이 자랑스럽게 복원해 보이는 것입니다.

    가해자인 안와르 콩고는 영화 속에서 뮤지컬 장르를 빌려 자신의 살인을 연출하고, 그 결과물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처형(execution)이라는 단어로 미화된 폭력이 예술적 표현 위에 얹히는 순간, 보는 사람은 구역질과 함께 이것이 실화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느낀 것은 단순한 혐오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그 구조 자체가 더 무서웠습니다.

    그 구조를 이해하는 열쇠는 처벌 면제(impunity)에 있습니다. 여기서 처벌 면제란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법적·사회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쿠데타 이후 수십 년간 군부가 권력을 유지했고, 학살 가담자들은 오히려 국가 유공자로 대우받았습니다. 범죄가 체제로 흡수되어 버린 것입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이 시기 인도네시아 학살을 20세기 최악의 인권 침해 사례 중 하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출처: Amnesty International).

    • 희생자 규모: 50만~100만 명 추산 (1965~1966년)
    • 가해자 안와르 콩고는 지역사회 유지로 활동 중
    • 처벌 면제 구조로 인해 공식 사과·배상 전무
    • 국제앰네스티, 20세기 최악의 인권침해 사례로 분류
    요약: 처벌 면제 구조 위에서 가해자는 영웅이 되고, 피해자의 기억은 지워진다.

     

    역사청산, 인도네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10여 일간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 솔직히 저는 그 나라를 꽤 단순하게 정리해 버렸습니다. 열대의 풍경, 느슨한 일상, 그리고 막연한 '우리보다 덜 발달한 나라'라는 인상이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피상적인 판단이었는지를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깨달았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국토 면적은 약 190만 제곱킬로미터로, 대한민국(약 10만 제곱킬로미터)의 거의 20배에 달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한 나라를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제 경험이 그걸 직접 가르쳐 줬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건 인도네시아만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청산(transitional justice)이란 과거 권위주의 체제나 폭력의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며, 피해자를 복권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과정이 지금도 진행 중이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사실상 멈춰 있습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 일제강점기 당시 빼앗거나 축적한 재산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수의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친일재산 환수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6년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일부 재산이 환수됐지만, 대상 특정의 어려움과 행정력의 한계로 전면적인 청산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제가 이 법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 그나마 시도는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도와 범위로는 역사적 부채를 갚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어딘가에서 반드시 터져 나옵니다. 유명 여배우의 조부가 친일 행적을 지녔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해당 배우가 사실상 연예계에서 강제 퇴장당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연예 가십이 아닙니다. 제도가 처리하지 못한 역사의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입니다.

    요약: 역사청산이 제도적으로 완결되지 못하면, 그 분노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개인을 향한다.
     

    상대적박탈감이 대중을 움직이는 방식

    저는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선 것도 아니고, 국가를 위해 특별한 희생을 감수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역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감정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이게 뭔가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이 나라에서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감각인 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이 비슷할 것입니다.

    그 감각의 바탕에는 상대적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 깔려 있습니다. 상대적박탈감이란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타인이 부당하게 점유하고 있다고 인식할 때 발생하는 감정적·인지적 반응입니다. 단순한 가난함이나 불평등과는 다릅니다. '저 사람이 저걸 가질 자격이 있는가'라는 정당성의 문제가 핵심입니다.

    친일파 후손이 그 시절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 위에서 여전히 풍요를 누리고 있다면, 그 사실을 아는 대중이 분노하는 건 비이성적인 반응이 아닙니다. 그 분노는 지극히 합리적인 정의감에서 비롯됩니다. 문제는 그 분노가 향하는 방향입니다. 구조적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 대중의 분노는 가장 가시적인 표적을 향하게 됩니다. 연예인이 되었든, 기업인이 되었든 마찬가지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의 인도네시아 피해자 가족들도 같은 감정을 품고 살아갑니다. 영화는 그것을 거의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해자들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오래 보여주면서, 보는 사람 스스로 그 불균형을 체감하게 만듭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화려한 재연이 아니라, 그 재연을 웃으며 지켜보는 주변 인물들의 표정이었습니다. 공모(complicity)의 구조, 즉 직접 손을 대지 않았지만 침묵으로 동조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그 표정들이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요약: 상대적박탈감은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만들어 낸 구조적 산물이며, 그 분노가 향하는 방향이 사회의 건강성을 결정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액트 오브 킬링은 실화 다큐멘터리인가요?

    A. 맞습니다. 1965~1966년 인도네시아에서 실제로 발생한 반공주의적 집단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가해자들이 직접 출연해 자신의 살인 행위를 재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현지에서 수년간 제작한 실제 기록입니다. 선댄스 영화제와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Q. 인도네시아 1965년 학살의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A. 연구자에 따라 추산치가 다르지만,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 기관들은 최소 50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공산당원 혐의자뿐 아니라 화교, 지식인, 노동조합 관계자들도 대규모로 희생됐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나 진상 규명을 완결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Q. 한국의 친일재산 환수는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 2006년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설치돼 일부 토지와 재산이 환수됐습니다. 그러나 위원회는 2010년 활동을 종료했고, 그 이후 후속 기구 없이 개별 소송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면적인 재산 환수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Q.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뭔가요?

    A. 가해자를 악마로 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유머 감각도 있는 인물로 묘사하면서, 그들의 행위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정당화됐는지를 보여줍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 즉 특별히 사악한 개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구조 안에서 거대한 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통찰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 지점이 보는 이를 오래 불편하게 만듭니다.

     

     

    결론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화가 나거나 슬프다기보다는, 이 문제가 인도네시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역사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해자의 기억은 신화가 되고, 피해자의 기억은 민간 영역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합니다. 그 불균형이 오래되면 사회 전체의 정의 감각이 무뎌집니다.

    판단하기 전에 알려고 하는 것, 그게 제가 이 영화에서 다시 다짐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표면만 보고 내린 결론이 얼마나 얕은 것이었는지를, 이 영화 한 편이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같은 아픔을 겪은 민족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법은 그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그 출발점으로 삼기에 충분한 영화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5%A1%ED%8A%B8%20%EC%98%A4%EB%B8%8C%20%ED%82%AC%EB%A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