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화면은 그냥 꺼졌습니다. 《조디악》(2007)은 실제 미제사건(未解決事件)을 다룬 영화입니다. 1960~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조디악 킬러의 이야기를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집요하게 따라간 작품입니다. 찝찝하고, 불편하고, 그래서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조디악 미제사건이 남긴 것 — 잡히지 않은 범인의 초상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었습니다. 오랜 수사 끝에도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화성연쇄살인사건처럼, 조디악도 결국 같은 결말이었습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채 수사는 흐지부지 끝나버렸습니다. 그 허무함이 화면 밖까지 전해졌습니다.
조디악 킬러는 1968년부터 1969년 사이 최소 5명을 살해하고, 샌프란시스코 지역 신문사에 암호문이 담긴 편지를 직접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암호문, 즉 사이퍼(Cipher)입니다. 사이퍼란 특정 규칙에 따라 문자를 변환한 암호 체계를 말하는데, 조디악은 이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 동시에 경찰과 언론을 조롱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보낸 암호 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해독되지 않았습니다(출처: FBI 공식 홈페이지).
영화는 이 사건을 쫓는 만화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의 집착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직업 수사관이 아니었음에도 수년을 이 사건에 매달렸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그가 범인을 잡고 싶었다기보다 이 사건이 '미완'으로 남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그 집착이 이해됐습니다. 저도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조디악 관련 자료를 찾아봤으니까요.
범행 수법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디악은 다양한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총기와 칼을 번갈아 사용했습니다. 범죄학(Criminology)에서는 이런 패턴을 MO, 즉 수법(Modus Operandi)이라고 부릅니다. MO란 범인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범행 방식을 의미하는데, 조디악의 경우 일관된 MO보다는 매번 변칙적인 방식을 택해 수사관들의 프로파일링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예측 불가능성 자체가 그의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 1968~1969년, 최소 5건의 살인 공식 확인 — 본인은 37명 살해를 주장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 주요 언론에 암호 편지 직접 발송
- 공식 용의자 아서 레이 본(Arthur Leigh Allen) 지목 — 끝내 기소 불가
- 일부 사이퍼는 2020년에야 일부 해독, 나머지는 여전히 미해독 상태

사회적 책임 — 조디악은 그냥 이상한 사람 한 명이었을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계속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왜 그는 그렇게 됐을까, 가 아니라 왜 우리는 그를 그냥 두었을까 였습니다.
조디악이 살인을 예고하고 실행에 옮긴 이유는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잡히지 않은 그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 내내 했습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출구가 살인이었다면 그 삶은 얼마나 피폐했을까요. 제가 느끼기엔 그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진 사람이었습니다.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에서는 이런 유형을 반사회적 성격장애(ASPD,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와 연결짓습니다. ASPD란 타인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공감 능력이 현저히 낮으며, 규범이나 법에 대한 무시가 반복되는 성격 패턴을 말합니다. 중요한 건 이 성향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의 환경, 사회적 고립, 정서적 방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NIH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당시 미국 사회가 조디악을 그냥 '이상한 개인' 한 명으로만 단정 짓고 끝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 명을 낳은 사회의 구조에 대한 질문은 없었습니다. 공포에 떨었지만 원인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도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범죄의 잔혹성은 해가 갈수록 강해지고, 범인들의 비사회적 성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개인을 처벌하는 데서 멈추고, 그 개인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한 질문은 뒤로 미뤄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파민(Dopamine) 중독이라는 관점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도파민이란 뇌에서 쾌락이나 보상 감각을 만들어내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살인 행위를 통해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공포를 유발하는 과정이 이 보상 회로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디악이 살인을 멈추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자극의 반복적 추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웃과 정서를 나누고, 타인에게 무언가를 내어주는 경험을 전혀 해보지 못했다면, 그 공백을 채우는 방식이 얼마나 뒤틀릴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디악 킬러는 결국 누구로 밝혀졌나요?
A. 공식적으로는 아직 미제입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아서 레이 본(Arthur Leigh Allen)이었지만, DNA 불일치와 물증 부재로 기소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2020년에 한 민간 연구팀이 조디악의 사이퍼 일부를 해독했지만, 범인의 신원을 확정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Q. 영화 《조디악》은 실화를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했나요?
A.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실제 수사 기록과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의 동명 저서를 바탕으로 제작했습니다. 주요 사건의 날짜, 편지 내용, 수사 흐름은 상당히 충실하게 재현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만 일부 장면은 극적 효과를 위해 재구성된 부분이 있습니다.
Q. 조디악 킬러가 보낸 암호는 다 해독됐나요?
A. 아닙니다. 조디악이 보낸 여러 개의 사이퍼 중 일부만 해독된 상태입니다. 2020년 12월 민간 연구팀이 340자짜리 암호문을 51년 만에 해독하는 데 성공했지만, 나머지 암호들은 여전히 미해독으로 남아 있습니다. FBI도 이 사건 파일을 아직 공개 수사 목록에 유지하고 있습니다.
Q. 영화가 불편하게 끝나는데, 이게 의도된 연출인가요?
A. 그렇습니다. 데이비드 핀처는 실제 미제사건의 미완성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범인이 잡히거나 진실이 밝혀지는 카타르시스를 의도적으로 제거했고, 그 불편함 자체가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찝찝함이 오히려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결론
《조디악》을 다 보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살인마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범인 한 명이 이상했던 게 아니라, 그 한 명을 이상하게 만들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시대, AI가 사람을 대신하고 기술이 삶을 바꾸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 사이의 연결은 더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그 고독의 깊이가 어떤 사람에게는 임계점을 넘기도 합니다.
잔혹한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개인의 일탈로만 보는 시각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웃과 정서를 나누고, 고립된 이를 알아채고, 사회가 먼저 손을 내미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디악이 잡히지 않은 것보다, 우리가 그런 조디악을 또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A1%B0%EB%94%94%EC%95%85(%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