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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홍콩 느와르의 아류라고 불러도 될까요? 저는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창동 감독의 신작이 화제를 모으면서 다시 꺼내 든 이 영화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온도로 가슴에 닿았습니다. 1997년 개봉한 <초록물고기>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IMF 직전 한국 사회의 균열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용히 녹아 있었습니다.

초목물고기 느와르라는 틀, 그 안에서 삐져나온 것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꽤 단순한 감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장국영과 주윤발이 주연한 홍콩 느와르 영화들과 비슷한 구조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느와르(noir)란 본래 '어두움'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온 장르적 개념으로, 조직 폭력·배신·절망적 결말을 특징으로 하는 범죄 영화 문법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느와르란 단순히 어둡다는 분위기를 넘어, 탈출구 없는 구조적 폭력 속에 개인이 소멸되는 서사를 의미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석규 배우가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가족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은, 장국영이 영화 마지막에 연인에게 전화를 걸며 태어날 아이를 그리워하는 장면과 제 머릿속에서 정확히 겹쳤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 평가는 솔직히 이 영화를 저평가하는 방향이었습니다. '한국판 홍콩 느와르'로 분류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그 판단은 절반만 맞았습니다. 구조는 닮았지만, 그 안에서 삐져나오는 것들이 달랐습니다. 막동이가 꿈꾸는 것은 총도 권력도 아닌,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작은 식당 하나입니다. 이것은 홍콩 느와르가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정서였습니다.
- 홍콩 느와르의 주인공은 대체로 권력과 생존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막동이의 동기는 가족의 재결합이라는 훨씬 소박한 곳에 있습니다
- 마지막 전화 장면은 형식적으로는 닮았지만, 담긴 감정의 결은 전혀 다릅니다. 장국영의 전화가 낭만적 비극이라면, 한석규의 전화는 소리 없이 무너지는 한국적 체념에 가깝습니다
- 이창동 감독은 이 장르적 문법을 빌려오되, 그 안을 1990년대 한국의 계층 붕괴와 가족 해체 문제로 채워 넣었습니다

한국적 정서가 서사를 어떻게 바꾸는가
1997년은 한국이 IMF 외환위기를 맞이하기 직전입니다. 경제적 격차가 가시화되고, 수도권 신도시 개발로 공동체가 해체되던 시기였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인 일산 신도시는 그 상징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막동이는 군 전역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 고향은 이미 개발로 지형이 바뀐 낯선 공간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 공간적 소외감을 통해 서사적 개연성(narrative causality), 즉 인물의 선택이 필연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서사 구조를 구축합니다. 여기서 서사적 개연성이란 관객이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가 아니라 "저 상황이라면 나도 그랬겠다"고 느끼게 만드는 장치를 말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가장 예상 밖이었던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막동이가 조직에 발을 들이는 과정이 탐욕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그저 가족이 함께 살 식당 하나를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구조가 그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이 서사는 일반적으로 신파(新派) 멜로드라마의 문법을 따른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신파란 지나친 감정 과잉과 작위적 비극을 반복하는 통속적 장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주로 한국 대중문화 비평에서 부정적 뉘앙스로 쓰입니다. 저도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다시 봐도 구조 자체는 흔한 비극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가슴이 찡한 이유는, 그 공식 안에서 작동하는 정서가 지극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이 영화는 1997년 개봉 당시 약 36만 명의 서울 관객을 동원하며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으로 상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냈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데뷔작에서 이미 장르와 사회적 발언을 함께 잡으려 했다는 점이 지금 다시 봐도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이창동이라는 감독이 고마운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감정이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제가 느낀 것은 영화에 대한 재평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감독이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왜인지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상업적 흥행이 보장된 달콤한 로맨스나 오락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감독입니다. 그런데 그는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에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사회적 리얼리즘(social realism), 즉 현실 사회의 모순과 구조적 불평등을 가감 없이 재현하는 미학적 태도를 지금껏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리얼리즘이란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실제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예술 창작의 방향성을 의미하며, 단순한 사실 묘사가 아니라 비판적 시선을 내포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독은 흔하지 않습니다. 실력이 있으면 돈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보면, 그것이 단순한 예술적 취향이 아니라 일종의 윤리적 선택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초록물고기>에서 <버닝>에 이르기까지, 그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은 언제나 사회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자리였습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2010)가 각본상을 수상한 것은 이 일관된 태도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증거입니다(출처: 칸 국제영화제 공식 사이트). 그 시작이 바로 이 <초록물고기>였다는 사실이,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보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줍니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제가 사는 세상을 함께 살고 있다는 것. 그 생각에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자리를 못 뜬 것은 제 경험 중에서도 꽤 드문 일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초록물고기는 홍콩 느와르를 따라 만든 영화인가요?
A. 장르적 문법은 분명 닮아 있습니다. 조직 폭력, 배신, 비극적 결말이라는 느와르의 구조를 공유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동기가 권력이나 생존이 아닌 가족 재결합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1990년대 한국 사회의 공간적·계층적 현실을 정밀하게 담아낸다는 점에서 단순한 아류로 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아류로 분류했다가 다시 보고 생각을 바꾼 이유도 그것입니다.
Q. 이창동 감독의 첫 번째 영화가 초록물고기인가요?
A. 그렇습니다. 1997년 개봉한 <초록물고기>는 이창동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이후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 <시>(2010), <버닝>(2018)으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의 출발점이며, 데뷔작에서부터 사회적 리얼리즘의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했다는 점에서 그의 전체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영화입니다.
Q. 한석규 배우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A. 한석규 배우는 주인공 이막동 역을 맡았습니다. 군 전역 후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이 가족을 위한 식당을 마련하려다 조직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인물입니다. 한석규 배우는 이 역할로 당시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과 함께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대표 배우가 되었습니다.
Q. 지금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분들에게도 볼 만한 영화인가요?
A. 제 경험상 지금 처음 보는 분들에게도 충분히 유효합니다. 다만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맥락, 특히 신도시 개발로 인한 공동체 해체와 IMF 직전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알고 보면 영화가 훨씬 두껍게 읽힙니다. 이창동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먼저 본 분이라면, 이 영화에서 그 출발점을 확인하는 재미가 따로 있습니다.
결론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고, 두 번 다 다른 이유로 가슴이 찡했습니다. 처음에는 홍콩 느와르와의 유사성에 집중하느라 그 안에 녹아든 한국적 정서를 놓쳤습니다. 두 번째에는 그 정서가 너무 선명해서, 왜 처음에 그걸 못 봤는지 되려 제 자신이 의아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이 화제를 일으킬 때마다 그의 과거 작품들이 재조명받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특정 시대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지금도 유효한 질문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처음이라면 장르 영화로 보셔도 좋고, 이창동 감독의 팬이라면 그의 사회적 리얼리즘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보든, 마지막 공중전화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B4%88%EB%A1%9D%EB%AC%BC%EA%B3%A0%EA%B8%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