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루마니아에서 낙태는 1966년부터 1989년까지 23년간 형사처벌 대상이었습니다. 단순히 법이 금지한 게 아니라, 임신 4개월 이상의 태아를 처리한 시술자에게는 살인죄에 준하는 혐의가 적용되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그 숫자 하나에서 이미 숨이 막혔습니다. 4개월. 그 경계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는 것이.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사회주의 체제가 낙태를 어떻게 범죄로 만들었나
차우셰스쿠 정권은 1966년 인구 증가 정책의 일환으로 낙태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이를 프로나탈리즘(pro-natalism)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국가가 출산을 장려하는 것을 넘어 강제하는 이념으로, 개인의 신체 자율권보다 국가의 인구 목표가 우선시되는 구조입니다. 그 결과 루마니아에서는 1966년 이후 출생률이 급등하는 동시에, 불법 시술로 인한 여성 사망률도 함께 치솟았습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이 시기 루마니아의 임신 관련 여성 사망률은 유럽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출처: WHO 생식보건 부문).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2022년 연방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폐기하면서 낙태권이 다시 각 주의 법에 맡겨졌습니다. 쉽게 말해 연방 차원에서 보장하던 낙태 권리가 사라지고, 어느 주에 사느냐에 따라 같은 행위가 합법이 되기도, 중범죄가 되기도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1980년대와 미국의 2022년이 그렇게 겹쳐 보였습니다.
영화가 특히 제게 무거웠던 이유는, 시술자가 처하는 형사적 위험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협박의 도구가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임신 4개월이 넘은 태아를 처리하면 살인죄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법적 구조, 즉 형사책임(criminal liability) — 개인이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의무 — 이 고스란히 약자를 옥죄는 무기로 전환됩니다. 시술자 베베는 그 위험을 빌미로 두 친구를 볼모로 삼았습니다.
- 루마니아 낙태 전면 금지 시기: 1966~1989년 (23년간)
- 차우셰스쿠의 프로나탈리즘 정책: 국가 인구 목표를 위한 출산 강제
- 결과: 불법 시술 급증, 여성 사망률 유럽 최고 수준
- 2022년 미국 Roe v. Wade 폐기: 낙태권이 다시 주 입법 사항으로
낙태죄의 경계, 그 숫자가 만들어낸 절망
영화 속 가비타의 임신 주수는 이미 법적 위험 구간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 임신 주수(gestational age) — 마지막 생리 첫날부터 계산한 태아의 성장 기간 — 가 낙태 허용 여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됩니다. 루마니아 법은 이 수치를 기계적으로 적용했고, 시술자 베베는 그 수치를 알면서도 돈과 몸을 요구하는 협상 카드로 활용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가 가장 잔인한 이유는, 피해자가 시술자를 신고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신고하는 순간 자신도 공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틸리아와 가비타가 베베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그들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이것이 단순한 도덕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은 이 영화로 200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사이트). 황금종려상(Palme d'Or)이란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최고상으로, 영화계에서 사실상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입니다. 고지식하고 억압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저는 일종의 반어처럼 느껴졌습니다. 법으로는 입을 막을 수 있어도, 예술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
산모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4개월이 넘은 태아를 꺼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솔직히 의문이었습니다. 결말은 가비타가 원하는 대로 되었지만, 저는 오히려 그 성공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니까요.


죄책감은 누구의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저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오틸리아는 친구 대신 욕조 안의 태아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고, 돌아와 가비타와 마주 앉습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감독은 이 침묵에 어떤 설명도 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침묵이 이 영화 전체를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낙태 이후 여성이 경험하는 심리적 반응은 임상적으로 복잡하게 나타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Post-Traumatic Stress Response) — 충격적 경험 이후 플래시백, 감정 마비, 회피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태 — 이 보고되기도 하고, 반대로 안도감과 죄책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 감정(ambivalence)을 경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쉽게 말해 "잘했다"와 "잘못했다"가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그 복합성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붙잡혀 있던 질문은 죄책감의 귀속 문제였습니다. 낙태로 인한 죄책감은 임신한 여성의 것인가, 그 상황을 만든 남성의 것인가, 불법으로 만든 국가의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는 문화 전체의 것인가. 아직도 저는 이 질문에 단정적인 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단정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낙태가 살인인지 아닌지의 논쟁은 태아의 도덕적 지위(moral status of the fetus) — 태아를 법적·윤리적으로 독립된 인격체로 볼 것인지의 문제 — 와 직결됩니다. 이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낙태를 둘러싼 모든 논쟁의 출발선이 달라집니다. 제 경험상 이 문제는 한쪽 논리가 완전히 옳다고 결론 내리기 어렵고, 그래서 사회마다, 시대마다 법이 계속 바뀌는 것이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특정 실화를 직접 각색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1980년대 루마니아에서 낙태 금지 시기에 실제로 벌어지던 불법 시술 관행을 사실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은 당시를 직접 경험한 세대로, 실제로 있었던 일들의 집합적 기억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Q. 루마니아 낙태 금지법은 왜 생겼나요?
A. 차우셰스쿠 정권이 1966년 국가 인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입한 프로나탈리즘 정책의 일환입니다. 국가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의무화한 것으로, 피임과 낙태 모두 강력히 제한되었습니다. 이 정책은 1989년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하면서 함께 폐지되었습니다.
Q. 낙태죄 논쟁에서 임신 주수가 왜 중요한가요?
A. 임신 주수는 태아의 발달 단계를 나타내는 지표로, 각국의 낙태 허용 기준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태아가 자궁 밖에서 독립 생존이 가능한 시점인 생존 가능성(viability) — 통상 임신 22~24주 이후 — 을 기준으로 허용 여부를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수가 높을수록 법적·윤리적 논쟁이 복잡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Q. 이 영화가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유가 뭔가요?
A.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 설명하지 않고 인물의 행동과 공간만으로 보여주는 연출 방식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핸드헬드 카메라와 롱테이크를 활용한 다큐멘터리식 스타일이 사건의 긴장감을 극대화했고, 그 형식 자체가 내용을 더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2007년 칸 경쟁 부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루마니아 누벨바그(Romanian New Wave)를 세계에 알린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결론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판단을 유예한 채 그 침묵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낙태가 살인인가 아닌가의 질문은, 제가 직접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을 가장 무겁게 지고 가는 사람이 언제나 가장 선택지가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것. 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법이 어느 쪽을 향하든 누군가는 계속 볼모로 잡힐 것입니다. 이 영화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법의 잣대를 피해 그 진실을 세상에 꺼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저는 여전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