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흑백 유럽 영화 한 편 보려고 틀었습니다. 1910년대 독일의 작은 마을 이야기라길래 느긋하게 볼 생각이었는데, 30분도 채 안 돼서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하얀 리본》은 순결과 죄책감을 무기로 삼는 권위자가 한 공동체를 어떻게 조용히 망가뜨리는지를 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망가진 공동체의 이름이 '독일'이었다는 사실이, 영화가 끝나고 한참 뒤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얀 리본 흰 리본이 상징하는 것은 순수함이 아니라 죄책감이었습니다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순결이나 희망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영화 속 하얀 리본의 정체는 전혀 달랐습니다. 마을 목사는 자녀들이 사소한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팔에 흰 리본을 달아 줍니다.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죄를,..
루마니아에서 낙태는 1966년부터 1989년까지 23년간 형사처벌 대상이었습니다. 단순히 법이 금지한 게 아니라, 임신 4개월 이상의 태아를 처리한 시술자에게는 살인죄에 준하는 혐의가 적용되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그 숫자 하나에서 이미 숨이 막혔습니다. 4개월. 그 경계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는 것이.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사회주의 체제가 낙태를 어떻게 범죄로 만들었나차우셰스쿠 정권은 1966년 인구 증가 정책의 일환으로 낙태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이를 프로나탈리즘(pro-natalism)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국가가 출산을 장려하는 것을 넘어 강제하는 이념으로, 개인의 신체 자율권보다 국가의 인구 목표가 우선시되는 구조입니다. 그 결과 루마니아에서는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