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깊이 연결됐다고 느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우리 사이에 처음부터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적이 있습니다. 영화 을 보고 나서 그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해고 노동자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고, 카메라가 꺼진 뒤에는 각자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촬영이 끝나면 인연도 끝난다는 그 구조가, 생각보다 훨씬 아팠습니다. 가능한 사랑 계급의 경계, 우정인 척 숨어 있던 것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이 참 묘합니다. 평소엔 마주칠 일 없는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앉게 되는 곳이니까요. 영화 속 호식 부부와 상우 부부가 처음 만나는 것도 그런 장면입니다. 호식은 해고 노동자이고 상우는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둘 사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가 찜찜한데 딱히 설명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저한테 이창동 감독 영화가 꼭 그렇습니다. 보는 중에도, 보고 나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중에야 "아, 이창동이었구나" 싶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2018년 개봉한 도 그 목록에 들어 있는 영화입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을 정도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지만, 정작 저는 보고 나서 "그래서?"라는 물음표만 남았습니다. 영화 버닝 계급 격차와 열등감, 이 영화가 보여주려 한 것영화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 종수, 어린 시절 동창 해미, 그리고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데려온 남자 벤. 이 세 인물이 만들어내는 삼각 구도입니다. 그런데 이 삼각형이 묘하게 불균형합니다.종수는 임시직을 전전..
교도소 면회실에서 살인범이 웃고 있었습니다. 평온한 얼굴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앞에서. 제가 영화 밀양(2007)을 처음 봤을 때 그 장면에서 손에 땀이 났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종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용서는 과연 누구의 권리인가. 이 영화는 그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들이밉니다. 밀양 용서의 구조 —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용서하는가영화 밀양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의 연기로 더 유명하지만, 제가 주목한 건 수상 기록보다 이창동 감독이 설계한 서사 구조였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단순한 종교 비판이 아닙니다. 용서의 주체성(agency), 즉 누가 용서할 권리를 갖는가라는 윤리철학적 문제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체성이란 어떤 행위를 시작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격..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개봉 당시에도, 그리고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훑으며 재관람한 지금도, 영화 오아시스는 저에게 여전히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이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 뿌리를 파고들다 보니 결국 저 자신의 편견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습니다. 오아시스 불편함의 정체 — 스크린 앞에서 찌푸려진 미간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느낀 감정은 감동이 아니었습니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뭔가 보면 안 될 것을 보는 것 같은 불편함이었습니다. 교통사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 홍종두가 그 집에 홀로 방치된 장애인 한공주를 발견하는 장면부터 그랬습니다.홍종두는 형사 미성년자 성추행죄가 아닌 뺑소니 교통사고로 교도소에 다녀온 인물입니다. 여기서 '뺑소니'란 사고 후 피해자를..
악인에게도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이유 자체가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어야 할까요. 저는 박하사탕을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1999년 이창동 감독이 내놓은 이 영화는, 타락한 인간의 생애를 거꾸로 펼쳐 보이며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묻습니다. 그 물음이 지금도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한 마디와 함께 회자되는 이유일 겁니다. 박하사탕 역순구조, 왜 거꾸로 보여주는 걸까요보통 영화는 인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앞에서 뒤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박하사탕은 정반대입니다. 현재의 파국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逆順敍事) 구조를 택했습니다. 역순 서사란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 결말을 먼저 보여준 뒤 그 원인을 소급해 추적하는 ..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 "아는 사람 같다"는 느낌 하나로 서로를 알아본다. 영화 는 그렇게 출발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면 저는 이상하게 달달한 영화가 당깁니다. 그런데 이번엔 단순히 달콤하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이별을 성장으로 읽어낼 줄 아는 영화를 만났습니다. 만약에 우리 한국로맨스, 신파에서 성장 서사로한국 로맨스 영화는 오랫동안 신파(新派) 코드에 기대왔습니다. 여기서 신파란 과도한 감정적 자극, 즉 죽음이나 불치병, 계층 갈등 같은 설정으로 관객의 눈물을 유도하는 서사 방식을 가리킵니다. 솔직히 저도 한때는 그게 로맨스의 공식인 줄 알았습니다. 남녀 중 한 명이 죽거나,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로 끝나야만 '진짜 사랑 이야기'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런데 ..
2009년 개봉한 영화 은 1990년대 학교 문화를 배경으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위계질서와 폭력, 그리고 성장을 날것 그대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낯설지 않았습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 귓가에 맴돌던 소문들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이었으니까요.영화 바람 그 시절 학교, 우리가 몰랐던 이면일반적으로 1990년대 학교를 떠올리면 교복 자율화나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문화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시절 교실 안은 훨씬 복잡한 세계였습니다. 체벌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던 시대였고, 이른바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교사의 물리적 제재가 당연하게 통용되었습니다. 체벌(體罰)이란 교육적 목적 혹은 통제 수단으로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행위로, 2010년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