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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하사탕 (역순구조, 김영호, 이창동)

악인에게도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이유 자체가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어야 할까요. 저는 박하사탕을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1999년 이창동 감독이 내놓은 이 영화는, 타락한 인간의 생애를 거꾸로 펼쳐 보이며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묻습니다. 그 물음이 지금도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한 마디와 함께 회자되는 이유일 겁니다. 박하사탕 역순구조, 왜 거꾸로 보여주는 걸까요보통 영화는 인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앞에서 뒤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박하사탕은 정반대입니다. 현재의 파국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逆順敍事) 구조를 택했습니다. 역순 서사란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 결말을 먼저 보여준 뒤 그 원인을 소급해 추적하는 ..

카테고리 없음 2026. 9. 28. 15:30
영화 초록물고기 (느와르, 한국적 정서, 이창동)

이 영화를 홍콩 느와르의 아류라고 불러도 될까요? 저는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창동 감독의 신작이 화제를 모으면서 다시 꺼내 든 이 영화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온도로 가슴에 닿았습니다. 1997년 개봉한 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IMF 직전 한국 사회의 균열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용히 녹아 있었습니다. 초목물고기 느와르라는 틀, 그 안에서 삐져나온 것들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꽤 단순한 감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장국영과 주윤발이 주연한 홍콩 느와르 영화들과 비슷한 구조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느와르(noir)란 본래 '어두움'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온 장르적 개념으로, 조직 폭력·배신·절망적 결말을 특징으로 하는 범죄 영화 ..

카테고리 없음 2026. 9. 28. 11:39
영화 만약에 우리 (한국 로맨스, 성장 서사, 이별의 재정의)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 "아는 사람 같다"는 느낌 하나로 서로를 알아본다. 영화 는 그렇게 출발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면 저는 이상하게 달달한 영화가 당깁니다. 그런데 이번엔 단순히 달콤하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이별을 성장으로 읽어낼 줄 아는 영화를 만났습니다. 만약에 우리 한국로맨스, 신파에서 성장 서사로한국 로맨스 영화는 오랫동안 신파(新派) 코드에 기대왔습니다. 여기서 신파란 과도한 감정적 자극, 즉 죽음이나 불치병, 계층 갈등 같은 설정으로 관객의 눈물을 유도하는 서사 방식을 가리킵니다. 솔직히 저도 한때는 그게 로맨스의 공식인 줄 알았습니다. 남녀 중 한 명이 죽거나,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로 끝나야만 '진짜 사랑 이야기'인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런데 ..

카테고리 없음 2026. 9. 17. 12:04
영화 곡성 (귀신의 정체, 무명의 역할, 열린 결말)

귀신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공포 영화가 관객을 가장 무섭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살목지를 보고 나서 문득 곡성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그 찝찝함, 영화관을 나오면서 옆 사람에게 "그래서 누가 귀신이었던 거야?"라고 되물었던 그 기억이요. 답을 못 찾은 채 극장 문을 나섰던 영화가 또 있었나 싶었습니다. 곡성 귀신의 정체 — 이미지 없는 공포가 더 무섭다곡성에는 전형적인 공포 영화의 문법이 빠져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시각적 귀신 현현(顯現)'이 없습니다. 여기서 귀신 현현이란, 관객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귀신의 실체적 등장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는 이 장치를 통해 관객의 공포를 촉발시키지만, 곡성은 그 방식을 완전히 거부했습니다.외지에서 마을로 흘러들어온 일본인(국촌 주..

카테고리 없음 2026. 9. 16. 19:59
영화 살목지 (공포 심리, 결말 분석, 관람 소감)

솔직히 저는 공포 영화를 잘 못 봅니다. 보고 나면 일주일은 어두운 방에 혼자 못 있을 정도로 잔상이 오래 남거든요. 그런데도 살목지를 봤습니다. 주변 후기들이 자꾸 눈에 밟혀서요. 결론부터 말하면 — 후회는 아닙니다. 다만 기대보다 가벼웠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살목지 공포 영화를 못 보는 내가 선택한 이유제가 공포물을 꺼리는 이유는 귀신을 믿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흐릿하고 음흉한 그림자, 어둠 속에서 뭔가 꿈틀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시각적으로 각인되어 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특히 잔혹 묘사나 피범벅이 된 사체 장면은 며칠씩 뇌리에 남아서 밤마다 불편하게 만들죠. 그래서 평소엔 범죄 수사 장르를 즐기더라도 험악한 장면이 나올 것 같으면 눈을 감아버리는 편입니다.그럼에도 살목지를 고른 건 순..

카테고리 없음 2026. 9. 16. 17:09
영화 결백 (장녀의 한, 범죄 서사, 법정 드라마)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신혜선이라는 배우가 좋아서 별 기대 없이 틀었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 소름이 끼쳤습니다. '결백'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탐욕으로 뭉친 공동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짓밟는지, 그리고 그 짓밟힘이 어떤 방식으로 되돌아오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결백 장녀의 한 가부장제가 한 여자에게 얹은 것들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장녀'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무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장남에게 집안의 책임이 쏠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장녀가 짊어지는 짐은 그것과 결이 다릅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역할에 더해 어머니의 몫까지 얹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이 영화의 주인공 정인(신혜선)은 유명 로펌의 변호사입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6. 9. 16. 15:02
영화 바람 (사춘기, 학교폭력, 성장통)

2009년 개봉한 영화 은 1990년대 학교 문화를 배경으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위계질서와 폭력, 그리고 성장을 날것 그대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낯설지 않았습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 귓가에 맴돌던 소문들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이었으니까요.영화 바람 그 시절 학교, 우리가 몰랐던 이면일반적으로 1990년대 학교를 떠올리면 교복 자율화나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문화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시절 교실 안은 훨씬 복잡한 세계였습니다. 체벌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던 시대였고, 이른바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교사의 물리적 제재가 당연하게 통용되었습니다. 체벌(體罰)이란 교육적 목적 혹은 통제 수단으로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행위로, 2010년 이후 ..

카테고리 없음 2026. 9. 16. 13:28
영화 인셉션 (꿈 조작, AI 욕망, 현실 반영)

영화가 픽션으로 끝날 수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 처음 개봉했을 때, 극장을 나서며 친구들과 나눈 토론의 결말은 늘 똑같았습니다. "영화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한마디로 더 이상 마음이 편해지지 않습니다. AI가 일상 속에 깊이 들어온 지금, 제가 그 영화를 다시 떠올릴 때마다 섬뜩한 느낌이 드는 건 과민 반응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인셉션 꿈을 조작한다는 게 말이 되는 설정일까꿈이 단순한 수면 중 뇌 활동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시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꿈은 영혼의 영역, 혹은 무의식이 말을 거는 통로로 여겨져 왔습니다. 프로이트가 꿈을 "억압된 욕망의 발현"으로 정의한 것도, 융이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

카테고리 없음 2026. 9. 16. 10:38
영화 [인터스텔라] 시공간, 상대성이론, 가족

양자역학이 삶의 언어가 됐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문과를 나온 저로서는 수식 하나 없이도 이해가 안 되는 개념인데, 그게 삶의 본질이라니요. 그러다 다시 꺼내 본 영화 한 편이 그 질문을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인터스텔라입니다. 인터스텔라 시공간이 뒤틀린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인터스텔라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멈칫했던 장면은, 주인공 쿠퍼가 밀러 행성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지구에서는 23년이 흘러 있었다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건 그냥 영화적 과장이겠지'라고 넘겼는데, 직접 찾아보니 이게 실제 물리학 이론에 기반한 내용이었습니다.여기서 핵심 개념이 시간 지연(Time Dilation)입..

카테고리 없음 2026. 9. 16. 08:01
영화 [오토라는 남자] 타인에 대한 오해, 고독한 노년, 연대

아파트 복도에서 규칙 어기는 이웃 때문에 속앓이를 해본 적 있으신 분이라면, 오토라는 남자가 남 얘기처럼 안 느껴지실 겁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 사람 왜 저렇게 유난이야"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다 보고 나서는 조용히 뒷목을 잡았습니다.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 안에 이렇게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오토라는 남자 꼰대라 불린 남자의 진짜 사정영화 는 2022년 개봉한 미국 드라마로, 스웨덴 원작 소설 와 동명 스웨덴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톰 행크스가 주인공 오토 앤더슨을 연기했는데, 그가 아니었으면 이 역할이 이렇게 입체적으로 살아나지 못했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오토는 마을 공동체 내에서 이른바 '자치 규범 집행자'처럼 행동합니다. 여기서 자치 규범이란 주민..

카테고리 없음 2026. 9. 1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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