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을 당한 사람이 스스로도 불륜을 저지를 뻔했다면, 그걸 참아낸 게 정말 '선한 결말'일까요. 왕가위 감독의 2000년작 〈화양연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 앞에서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배우자에게 배신당한 두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다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 감정을 스스로 끊어내는 이야기. 제목인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을 뜻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감정은 그 어떤 찬란함보다 훨씬 무겁고 복잡합니다. 화양연화 배신의 고통을 내면화하다 — 승화의 역설〈화양연화〉의 구조를 처음 분석했을 때, 제가 가장 주목한 심리 기제는 '내면화(internalization)'였습니다. 내면화란 외부에서 오는 충격이나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지 않고 자기 안쪽으로 삭이는 심리 과정을 말합..
누군가와 깊이 연결됐다고 느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우리 사이에 처음부터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적이 있습니다. 영화 을 보고 나서 그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해고 노동자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고, 카메라가 꺼진 뒤에는 각자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촬영이 끝나면 인연도 끝난다는 그 구조가, 생각보다 훨씬 아팠습니다. 가능한 사랑 계급의 경계, 우정인 척 숨어 있던 것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이 참 묘합니다. 평소엔 마주칠 일 없는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앉게 되는 곳이니까요. 영화 속 호식 부부와 상우 부부가 처음 만나는 것도 그런 장면입니다. 호식은 해고 노동자이고 상우는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둘 사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가 찜찜한데 딱히 설명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저한테 이창동 감독 영화가 꼭 그렇습니다. 보는 중에도, 보고 나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중에야 "아, 이창동이었구나" 싶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2018년 개봉한 도 그 목록에 들어 있는 영화입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을 정도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지만, 정작 저는 보고 나서 "그래서?"라는 물음표만 남았습니다. 영화 버닝 계급 격차와 열등감, 이 영화가 보여주려 한 것영화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 종수, 어린 시절 동창 해미, 그리고 해미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데려온 남자 벤. 이 세 인물이 만들어내는 삼각 구도입니다. 그런데 이 삼각형이 묘하게 불균형합니다.종수는 임시직을 전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개봉 당시에도, 그리고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훑으며 재관람한 지금도, 영화 오아시스는 저에게 여전히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이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 뿌리를 파고들다 보니 결국 저 자신의 편견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습니다. 오아시스 불편함의 정체 — 스크린 앞에서 찌푸려진 미간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느낀 감정은 감동이 아니었습니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뭔가 보면 안 될 것을 보는 것 같은 불편함이었습니다. 교통사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 홍종두가 그 집에 홀로 방치된 장애인 한공주를 발견하는 장면부터 그랬습니다.홍종두는 형사 미성년자 성추행죄가 아닌 뺑소니 교통사고로 교도소에 다녀온 인물입니다. 여기서 '뺑소니'란 사고 후 피해자를..
악인에게도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이유 자체가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어야 할까요. 저는 박하사탕을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1999년 이창동 감독이 내놓은 이 영화는, 타락한 인간의 생애를 거꾸로 펼쳐 보이며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묻습니다. 그 물음이 지금도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한 마디와 함께 회자되는 이유일 겁니다. 박하사탕 역순구조, 왜 거꾸로 보여주는 걸까요보통 영화는 인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앞에서 뒤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박하사탕은 정반대입니다. 현재의 파국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逆順敍事) 구조를 택했습니다. 역순 서사란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 결말을 먼저 보여준 뒤 그 원인을 소급해 추적하는 ..
이 영화를 홍콩 느와르의 아류라고 불러도 될까요? 저는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창동 감독의 신작이 화제를 모으면서 다시 꺼내 든 이 영화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온도로 가슴에 닿았습니다. 1997년 개봉한 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IMF 직전 한국 사회의 균열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용히 녹아 있었습니다. 초목물고기 느와르라는 틀, 그 안에서 삐져나온 것들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꽤 단순한 감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장국영과 주윤발이 주연한 홍콩 느와르 영화들과 비슷한 구조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느와르(noir)란 본래 '어두움'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온 장르적 개념으로, 조직 폭력·배신·절망적 결말을 특징으로 하는 범죄 영화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신혜선이라는 배우가 좋아서 별 기대 없이 틀었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 소름이 끼쳤습니다. '결백'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탐욕으로 뭉친 공동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짓밟는지, 그리고 그 짓밟힘이 어떤 방식으로 되돌아오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결백 장녀의 한 가부장제가 한 여자에게 얹은 것들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장녀'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무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장남에게 집안의 책임이 쏠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장녀가 짊어지는 짐은 그것과 결이 다릅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역할에 더해 어머니의 몫까지 얹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이 영화의 주인공 정인(신혜선)은 유명 로펌의 변호사입니다...
아파트 복도에서 규칙 어기는 이웃 때문에 속앓이를 해본 적 있으신 분이라면, 오토라는 남자가 남 얘기처럼 안 느껴지실 겁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 사람 왜 저렇게 유난이야"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다 보고 나서는 조용히 뒷목을 잡았습니다.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 안에 이렇게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오토라는 남자 꼰대라 불린 남자의 진짜 사정영화 는 2022년 개봉한 미국 드라마로, 스웨덴 원작 소설 와 동명 스웨덴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톰 행크스가 주인공 오토 앤더슨을 연기했는데, 그가 아니었으면 이 역할이 이렇게 입체적으로 살아나지 못했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오토는 마을 공동체 내에서 이른바 '자치 규범 집행자'처럼 행동합니다. 여기서 자치 규범이란 주민..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그냥 중년 여성과 소년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인 줄만 알았습니다. 영화 를 보기 전까지는요. 그런데 후반부가 시작되는 순간, 그 생각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문맹(文盲)이라는 단 하나의 비밀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그리고 역사의 죄까지 뒤흔드는지 — 이 영화는 그걸 아주 조용하고 잔인하게 보여줍니다. 더 리더 : 책읽어주는 남자 법정 장면 가장 크게 흔들린 순간영화 (원제: The Reader, 2008)는 전후 독일을 배경으로, 15세 소년 미하엘 베르크와 30대 여성 한나 슈미츠의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두 사람은 한나가 책을 읽어달라고 요청하면서 가까워지고, 어느 날 한나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집니다. 제가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는 단순한 현실 도피라고 읽었습니다. 관계..
직장에서 유능한 여성 리더를 봤을 때, 저도 모르게 "저 사람은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 생각 자체가 이미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이 뿌리 박힌 편견인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영화 「우리에겐 아직 내일이 있다」는 바로 그 편견이 당연하게 통용되던 시대, 이탈리아 여성들이 처음으로 참정권(Suffrage)을 얻게 되는 순간을 담은 작품입니다. 제목만 보고 달달한 로맨스물인 줄 알았던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우리에겐 아직 내일이 있다 속 여성 참정권 이야기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내일이 있다(C'è ancora domani)」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막연히 가족 간의 화해나 희망을 다룬 따뜻한 ..